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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외로움을 지니고 있는 우리사회 이야기

by 오로라진 2022.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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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2021)

인간에게 사회적 유대는 필수적입니다. 집단 속 개인이 아닌 단 한 사람은 의미가 있을까요.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킵니다. 이를 지탱하는 힘은 외로움입니다. 현대인은 외로움에 무감각합니다. 어쩌면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윤택한 삶을 위해 생산되는 물질에 도리어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고도로 체계화한 노동 과정 속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망각하고 있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1인 가구가 익숙한 시대에 연대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혼자가 편한 사람들, 혼자가 죽을 만큼 괴로운 사람들, 저마다 1인분의 외로움을 가진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혼자가 편한 사람과 혼자는 외로운 사람

혼자 사는 진아는 한 카드사의 상담원입니다. 그녀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의 고충을 상대합니다. 카드 사용 내역을 읊어달라는 고객의 요청을 무미건조하게 수행할 뿐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숫자는 곧 돈입니다. 빠르게 더 많은 콜을 처리하는 것만이 자기 능력을 입증하는 길입니다. 그녀는 매 순간 소통이 아닌 과업을 수행합니다.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고객을 대하기 때문에 능력을 인정받습니다. 견고하던 그녀의 일상은 신입사원 교육을 맡으면서 조금씩 흔들립니다. 관계가 불편해서 스스로 고립된 그녀에게 교육만큼 성가신 일이 또 있을 리 없습니다. 한 사람을 교육하는 과정은 깊은 관심과 애정의 연속입니다. 더욱이 신입사원 수진은 지나치게 수더분합니다. 옆자리에서 끊임없이 재잘대고 점심을 같이 먹자며 먼저 따라나서죠. 진아가 혼자인 게 편한 사람이라면 수진은 관계에 능숙한 사람입니다. 진아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수진을 밀어냅니다. 그녀가 의무적으로 방문하는 라멘집은 수진이 있다고 해서 딱히 틀어지지 않습니다. 음식을 주문할 때 사용하는 키오스크는 디지털 시대의 편의와 개인의 소외가 불편하게 공존합니다. 식당은 그저 음식을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일 뿐입니다. 식당 안 풍경도 철저한 개인만 존재합니다. 일렬로 늘어선 식탁은 서로 마주 볼 기회조차 제공하지 않습니다. 진아는 소통 없이도 편리한 세계에서 외로움을 잊고 살아갑니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아버지의 외로움

진아를 내부 세계에 고립시킨 사건은 엄마의 죽음입니다. 어머니를 애도할 새도 없이 사라졌던 아버지는 잿밥이 생기자 불이 나게 가정으로 돌아왔습니다. 경멸스러운 아버지의 일상을 지나는 홈 카메라로 들여다봅니다. 아버지는 종교의 연대를 통해서 가족 없는 설움을 해소하고 있었습니다. 낯선 여인이 건네주는 오이소박이를 날름 받아먹고 시끌벅적하게 춤판을 벌이기도 합니다. 외로움에 취약한 아버지 그의 외로움 해소법은 진아를 미묘하게 자극합니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외로움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외로움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분투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개인이 점처럼 존재하는 현대사회에서 타인의 개입은 불편한 것이 돼버렸습니다. 진아는 관계가 불편해서 스스로 고립을 택합니다. 이 영화는 그녀의 주변부에 심심한 자극을 심어둡니다. 복잡 다난한 외부 세계는 그녀의 견고한 내부 세계를 끊임없이 두드립니다. 진화의 껍질을 깨고 들어가려는 사람들. 그녀는 자기만의 견고한 철옹성을 지키려 합니다. 이 영화는 공간 단위로 개인을 구분합니다. 진아가 경험하는 관계의 차원은 공간으로 규정됩니다. 그녀는 본가에 있는 아버지를 피해서 복도식 아파트로 독립했습니다. 회사에서 마주치는 직원들은 기계적이고 흡연 구역에서 마주치는 팀장은 이해타산을 따집니다. 옆집 청년은 지나가 퇴근할 때마다 마주치는 백수입니다. 옆집청년은 마치 말을 걸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시간을 맞춰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그는 말 한마디가 고픈 사람입니다. 아쉽게도 청년은 마지막 한마디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가 본 것은 귀신이 아닐까 싶을 만큼 청년은 이미 오래전에 죽은 뒤였습니다. 미디어는 그를 방 안에 수많은 포르노에 깔려 죽은 남자로 묘사합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아픔을 안고 살았는지 사람들은 관심 같지 않습니다. 진아도 공공연히 그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눈물을 흘리지도 않습니다. 다만 불쾌한 감정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옆집 청년이 살던 빈 집에 새로운 남자가 들어옵니다. 성훈은 소위 인사 관계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의 이사를 돕는 친구들의 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는 인간 소외의 시대를 시원하게 역행합니다. 현실에도 얽힌 사람들이 참 많을 텐데 죽은 사람까지도 자기와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그는 외로이 죽어간 영혼을 위해 소소한 추모식을 준비합니다. 주거 공간이 물질 가치로 치환되는 시대 수평과 수직으로 구분 짓기 바쁜 시대 바로 오늘의 아파트에서 연대의 기억이 꿈틀 되기 시작합니다.

외로움을 안고 사는 사람들

영화 속 사람들은 저마다 1인분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움에 이끌려 사람을 찾거나 연대가 있는 곳을 찾아 뛰어들기도 합니다. 진아의 상담자 목록에 적힌 고객 '정신 이상자'는 굳이 2002년을 언급하면서 그때로 돌아가도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2002년은 상징적이죠. 영화는 이 시기를 개인이 외롭지 않았던 마지막 낭만의 시대로 여기는 듯합니다. 출신도 세대도 다른 불특정 다수가 한데 모여 붉은 악마의 목소리를 내던 시절 집단이 공유하는 기억은 중요합니다. 무수한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 속 개인은 나를 규정하는 중요한 척도가 됩니다. 현대는 집단의 기억보다 무수한 개인의 주장이 우월한 시대입니다. 진아는 그 속에서 외로울 새가 없습니다. 외로운 그녀의 방을 가득 채운 건 tv 소리고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볼거리는 현명한 도피처가 됩니다. tv가 고장 나자 진아는 성훈에게 말을 겁니다. 용기를 내서라도 사수하고 싶은 이 도피처는 이미 그녀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 볼거리가 아닌 주변의 타인들은 잔잔한 파장으로 시작해 서서히 그녀의 내부 세계로 접근합니다. 서툰 신입의 돌발 행동은 진아로 하여금 잊고 있던 감정을 일깨우게 합니다. 대충 맞춰주면 편한 '정신 이상자' 고객의 말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겁니다. 시스템의 경계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이 상담은 어느덧 시시콜콜한 이야기의 늪으로 빠지고 맙니다. 수진은 상담원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녀는 관계의 무게를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대화는 교감이고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일종의 스킨십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나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는 순간 빠르게 더 많이 하는 상담원의 미덕은 사라집니다. 수진은 다짜고짜 욕을 짓거리는 진상 고객에게도 매뉴얼대로 사과하지 못합니다. 이 대화가 그저 시스템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수진은 시스템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빠져나옵니다. 진아는 수진의 빈자리가 내심 신경 쓰이고 일상처럼 우겨놓던 라멘도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합니다. 카드 사용 내역을 읽어달라는 고객의 요청도 수행하지 못하죠. 일상처럼 해오던 일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수진이 던진 파장은 컸습니다. 굳이 마주하지 않으려 했던 외로움과 정면으로 마주한 겁니다. 빗장으로 잠겨 있던 진아의 경고한 성벽은 청년의 추모식에서 무너지고 맙니다. 세대도 성별도 종교도 다른 이들이 한데 모여서 누군가를 추모하는 그리운 풍경이 이미 고독사는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만큼 사회의 현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그만큼 타인의 외로움에 인색합니다. 이웃들의 진지한 추모는 그녀에게 일말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성훈이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이며 말을 건넵니다. 여전히 진아의 입속에는 불편한 죄책감이 씹힙니다.

죄책감으로 인한 관계정리

청년이 느낀 외로움이 만약 나와 같았다면 그가 건넨 말 한마디는 구원을 갈구하는 기도일지 모른다는 죄책감이 듭니다. 그때 그의 울분에 귀 기울이고 손을 잡아줬다면 어땠을까 그녀는 밀려오는 회안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진아는 작별 인사의 무게를 이제야 깨닫습니다. 곧바로 수진에게 전화를 걸어서 잘 가요라며 작별 인사를 남깁니다. 제대로 작별하지 못했기에 외롭게 떠나간 사람들 그들의 고통과 슬픔이 회한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자신과 연결된 사람들의 외로움을 깔끔하게 매듭짓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떨까요. 영화는 그녀를 본가로 보내고 눈물을 쏟는 뻔한 클리셰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홈 카메라라는 신기술은 그녀가 굳이 아버지와 대면하지 않아도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엽니다. 미적 거리는 상대와 얽힌 이해관계를 거두고 무관심으로 바라볼 때 아름다운 거리를 뜻합니다. 진아는 기술의 비호 아래 아버지와 미적 거리 두기를 시도합니다. 아버지의 경멸스러운 일상을 멀리서 지켜보며 그저 자신이 길들여진 일상의 안위 속에서 살아가길 도모합니다. 영화가 제시하는 외로움의 탈출 경로는 슬프게도 현실적입니다. 살을 부대끼며 정을 느끼던 그 시절의 전통적인 가족상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마치 이제 "내 외로움은 잘 알겠으니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둬"라고 소리치는 것 같습니다. 영화가 서술한 바에 의하면 디지털 방식의 소통이 썩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현대인 대부분은 이미 그런 삶이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수진은 수진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외로움과 싸울 뿐입니다. 진아는 여전히 일상의 안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녀는 외로움 한가운데서도 결코 인간의 군상 속으로 회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쉬워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녀는 이미 타인의 외로움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고립을 택했지만 누군가를 위해서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낭만적인 교류가 끊어진 이 사회에서 어쩌면 진정으로 이타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외로움에 무감각한 현대인을 위한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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