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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산의 부장들' 흔들린 그들의 충성

by 오로라진 2022.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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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산의 부장들(2020)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크게 위험 부담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정치적 계산과 이해도에 따라 어떻게든 진영을 갈라내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 속에서 아픈 현대사에 대한 영화적 접근은 필수적으로 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10.26 사건은 이미 무수하게 tv 드라마에서나 교양 프로그램에서 다루어졌고 또 세월의 흐름 속에 비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된 내용으로 수없이 그날의 풍경을 다 보여준 사건입니다. 관객들은 10.26 사건의 대략적인 풍경과 타임라인을 머릿속에 훤히 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산의 부장들이 풀어야 할 숙제는 간단명료합니다.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그날의 사건을 미스터리 식으로 풀어내거나 그날을 둘러싼 역사적 상황과 주요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방식은 너무나 평범합니다. '남산의 부장들'이 취해야 할 방향은 더욱 제한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민호 감독은 정색하고 정공법으로 갑니다. 그리고 놀랍도록 정통적인 방식의 결말을 훤히 아는 내용인데도 영화는 상당한 흡입력이 있습니다.

박 대통력의 권력에 대한 집착

영화는 중앙 정보부장 '김규평'과 경호실장 곽상천의 불꽃 튀는 대결 구도 속에서 박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집착, 그리고 그 사이에서 힘의 균열을 야기하는 전 중앙 정보부장 박용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철저히 이 네 사람의 내면과 욕망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영화적 주 배경은 10.26 사건 이전에 40일간을 다루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밝혀진 사실과 그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이야기와 주변 정세를 일관성 있게 꿰뚫어내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다양한 시점의 공식적인 사실은 물론 비화로만 떠돌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어떻게든 다 건드려서 언급하고 있는데 산만하지가 않습니다. 감독이 그만큼 완급 조절에 성공하고 있다는 방증이지요.

모두의 욕망과 집착

사실 크게 보면 당시 네 명의 인물이 처한 상황과 집착하는 욕망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은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올 생각이 전혀 없으며 '김규평'과 곽상천은 박 대통령의 최측근 자리에서 결코 벗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의 정면으로 반기를 든 박용각 또한 최측근 시절의 달콤함을 그리워하긴 마찬가지죠. 그러하기에 어떻게든 밀려날까 봐 두려워하는 불안 심리는 네 명의 인물을 꿰뚫는 공통적인 주제입니다. 그리고 그 주제는 서로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수단으로 작용됩니다. 주요 배역들의 이름을 가상의 이름으로 교체한 것은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함이기도 하겠지만 극적인 설정을 위해 역사적인 사실들을 네 명의 갈등으로 최대한 압축하고 통합하여 보여주려는 의도 때문일 것입니다. 감독의 의도가 가장 엿보이는 부분은 '김규평'과 박용각 그러니까 김재규와 김영옥이 친구로 설정된 부분입니다. 원작자에 의하면 실질적으로 김영옥은 김재규와 연배 차이가 있으며 김재규는 5.16 쿠데타의 중심에 있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혁명의 동지이며 친구라는 영화적 설정은 그들의 동기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들며 주제의 일관성을 공고케 합니다. '김규평'과 박용각이 미국에서 만나 벤치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박용각의 대사를 통하여 미국에서 거의 신처럼 추앙받는 링컨조차 결국은 총에 맞아 암살되었음을 상기시킵니다. 당연히 이 장면은 박 대통령의 최후에 대한 명백한 암시겠죠. 그리고 두 사람은 혁명 그러니까 5.16 쿠데타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 대화 속에서 규평과 용광은 서로에게 혁명 가담의 책임을 미룹니다. "네가 먼저 하자고 했잖아" 그렇습니다. 순수하게 과거에 가장 좋았던 순간을 추억하거나 권력에 대한 책임을 서로 공유하기에 그들은 이미 너무 많은 선을 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권력에 대한 집착은 커져버린 것이죠. 남산의 부장들은 분명 웰메이드 장르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즐거웠던 부분은 정치극을 소재로 하면서 할리우드 스파이물 형식을 차용한 부분입니다. 사실 누가 이 사건의 스파이물 형식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김규평'과 곽상천의 극단적인 대립 구도 속에서 펼쳐지는 박용각 암살 시도 장면은 이러한 지점의 백미입니다. 박 대통령이 참석한 한국에서의 대공연 장면과 프랑스에서 행해지는 추격 장면이 교차하는 시퀀스는 영화적 완급 조절에 있어서나 음악적 통일성을 활용함에 있어 기술적으로도 훌륭하지만 네 명의 인물의 욕망이 집결된다는 면에서 영화적 주제를 돋보이게 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박 대통령의 절대적인 모습이나 그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주변 인물 풍경은 바로 마피아의 풍경입니다.

네 명의 인물 구도

네 명의 인물이 중심적으로 교차되는 청와대 집무실을 표현함에 있어 박 대통령 중심의 인물 구도나 명암 대비는 대부에서 활용했던 기술적인 방식과 유사합니다. 영화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박 대통령의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대사는 대부의 그 유명한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할 거야"라는 대사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영화적으로 빛을 발하는 순간은 또 있습니다. 부마항쟁을 목격하는 '김규평'의 시선이나 박 대통령 시해 후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는 그의 고민을 포착하는 구도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과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연결시켜주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김규평'이 부마항쟁의 분위기를 확인하러 헬기를 타고 날아가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김규평'의 헬기 시점으로 시위 현장을 비춰줍니다. 그 시절의 분위기를 이러한 시점으로 묘사한 적은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이 장면은 현재의 정치 상황으로 넘어와 tv에서 촛불 시위를 보여주는 장면과 묘한 연결을 이루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구도는 '김규평'이 남산으로 향할지 육군본부로 향할지 끝까지 고민하는 역사적 가정 상황에서도 활용됩니다. 그리고 그가 탄 차가 유턴함으로써 쾌속 질주하던 역사적 파도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넌지시 비칩니다. 감독은 이 장면 이후에 곧바로 청와대 집무실 금고를 여는 '전 두혁' 그러니까 전두환을 등장시킵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역사적 사건보다는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밝혔는데 그러한 의도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는 절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요 인물을 연기하는 네 명의 배우들은 그런 의도에 기대 이상으로 부응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주요 배우가 가장 잘하는 혹은 잘했던 연기를 역사적 인물에 대입시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연기만으로도 몰입도가 상당합니다. '남산의 부장들'은 감독이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김재규라는 인물을 재평가하는 시점에 공식 문서와 같이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역사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산의 부장들'은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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