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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반전을 더하는 여성성강조 영화[아가씨]

by 오로라진 2023.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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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가씨(2016)

'아가씨'는 다들 아시다시피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짐작하고 남겠지만 여러 의미에서 평범하거나 쉬운 영화는 아닙니다. 봉준호 감독님과 달리 박찬욱 감독님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편입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

그 원인을 제공하는 연출관을 두고 누군가는 호감을 가지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거부감을 나타냅니다. 아마 '아가씨'를 본 후의 반응도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전자에 속하는 분이라면 만족이 크실 것이고 후자에 속하는 분이라면 또 한 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실지도 모릅니다. '아가씨'는 사라 워터스가 쓴 소설이 원작입니다. 영국에서는 드라마와 연극으로 제작된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많은 각색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원작에서 가져온 주요 설정 중 하나는 주인공 두 명이 여자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이들의 사랑으로부터는 흔히 보는 남녀 간의 그것과는 다른 기운이 전해집니다. 비단 육체적인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영화 속 남성들이 욕망하는 사랑과는 뚜렷한 간극이 있습니다. '아가씨'는 두 여자의 몇 가지 공통점을 파고들면서 현실 도피적인 이상으로 인도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델마와 루이스'와 언뜻 겹쳐지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25년 전에 나온 이 영화에 원작을 섞어서 박찬욱 스타일을 입히면 '아가씨'가 될 것 같습니다. '델마와 루이스'를 보신 분이라면 좀 전에 표현에서 눈치채셨겠지만 '아가씨'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한 속박과 폭압에서의 해방을 노래합니다. 시간과 배경 그리고 상황의 설정부터가 모두 그것을 담보로 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어서 중의적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흥행을 염두에 둔 탓인지 홍보 단계에서는 이런 면이 부각되지 않도록 애쓰고 있었습니다.

반전의 반전

본래 원작의 경우는 레즈비언을 등장시키되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로 인기가 좋았습니다. 이것만 봐도 박찬욱 감독님이 관심을 가지기엔 충분하죠. 각색도 원작을 바탕으로 반전의 묘미를 배가시키기 위한 구조를 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아가씨'는 총 3부로 구성하여 1부에서는 하녀의 관점으로 2부에서는 아가씨의 관점으로 진행합니다. 3부에서는 두 사람을 모으고 다른 사람들의 관점까지 더하면서 이야기를 정리합니다. 1부와 2부의 관계는 상호 보완적인 동시에 다른 관점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으로부터 유머와 긴장을 이끌어 냅니다. 특히 아가씨와 하녀 그리고 백작이 저마다 가진 진짜와 가짜의 양면성은 일부와 2부를 오가면서 빛을 바랍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아주 좋았습니다. 예전부터 묘한 분위기를 가졌다고 생각했던 '김민희' 씨는 박찬욱 영화 특유의 색깔과 만나면서 화룡점정을 이룹니다. '김태리' 씨는 신인이라기엔 연기도 잘했지만 외모에서부터 풍기는 자태가 캐릭터와 딱이었습니다. '하정우' 씨는 능글맞은 연기를 유감없이 해내면서 악역 아닌 악역의 매력을 높였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만큼이나 영상미와 소위 말하는 미장세는 여전히 눈부십니다. 제작비가 무려 150억 원이나 들어간 영화 다운 티가 역력하게 납니다. 촬영지가 어딘지 궁금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 풍경도 돋보이고 그 속에 놓은 집은 서양식과 동양식이 공존하는 독특한 건물입니다. 이 건물에 진짜 위용이 드러나는 것은 내부입니다. 일반적으로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하는 미술 감독과 의상 감독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를 절로 알 수 있습니다. 과시적인 면도 있긴 하지만 주제와 이어서 보면 결코 과유불급이라고 평가 절하할 수만은 없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이 모든 것의 조화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중반부를 지나면서 퇴색됩니다. 결과적으로는 3부로 나눈 것이 영화의 도구로 작용했습니다. 일단 반전이 이른 시점에 터집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10분 이해하지만 그 바람에 전작들과 달리 관객의 흥미를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힘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이를테면 스릴러로 시작해서 드라마로 방향을 바꾸는 게 너무 빨랐습니다. 반전을 일찍 공개한 것도 원인이지만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두고 최상의 결과가 나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예컨대 듣자 하니 원작에서는 여러 인물의 관계가 얽히고 얽혔다고 합니다. 필시 이것은 원작의 이야기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자리했을 것입니다. 반면에 '아가씨'는 하녀와 아가씨 그리고 백작의 대립 구도를 빠른 시간에 정리해 버립니다. 그래서 3부는 거의 힘을 쓰지 못합니다. 아울러 반전은 원작과 달리 한 번으로 줄었다고 하는데 사실 잘 보시면 엄밀히 말해서 두 번의 반전이 있습니다. 근데 왜 반전이 하나라고 얘기하는 걸까요. 아가씨가 어떤 의미를 지는 영화고 무엇을 지향했는지를 이 질문의 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성중심의 영화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아가씨'는 여성 중심의 영화입니다. 박찬욱 감독님은 자신의 영화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친절한 금자 씨'부터 '스토커'까지는 전면에 세웠었죠. 더 앞선 영화인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와 '복수는 나의 것'에서도 여성이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그랬던 것이 '아가씨'에 이르러서는 두 명의 여성을 내세우는 것으로 확대됐습니다. 이것만 헤아리더라도 '아가씨'가 어떤 영화인지는 짐작하고 남습니다. 혹시라도 남성 중심 사회와 여성 인권에 대한 얘기는 반사적으로 거부하시는 분이라면 지금부터 이 영상은 물론이고 영화도 보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아가씨'는 남성의 속성과 본능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영화입니다. 두 여성이 맞서는 대상을 성적인 의미에서의 남성으로 국한시키지 않는다면 세상을 지배하는 모든 구속과 폭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습니다. 애써 의미를 부여하자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솔직히 저도 이건 너무 거창한 것 같고 '아가씨'는 어디까지나 긍정적인 페미니즘에 적합한 영화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아가씨'에서 아가씨는 이모부의 철저한 구속과 통제를 받으면서 사육되다시피 하며 자랐습니다. 하녀는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하려는 백작의 음모에 가담했습니다. 즉 두 사람 다 주체성을 박탈당한 채로 남성의 노리개와 도구로 전락한 여성들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남성들이 휘두르는 유무형의 폭력에 몸을 내맡긴 채 살았던 것입니다. 그랬던 두 사람이 만나면서 현실에 반기를 들고일어나는 과정을 담은 영화가 바로 '아가씨'입니다.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하는 것은 두 사람이 가짜가 아닌 진짜 사랑의 감정을 키우는 것이지만 발판을 제공하는 것은 하녀의 등장과 변화입니다. 앞에서 '김태리' 씨가 캐릭터에 딱 맞는 배우였다고 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녀는 상당히 영악하지만 아직 속세의 때가 묻지는 않은 소녀였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종의 선을 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녀가 미약하게 남아 간직하고 있던 어떤 성질을 상징과 은유를 통해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같은 의미에서 하녀에 의해 그 선이 어떤 운명을 맞게 되는지도 눈여겨보셨으면 합니다.

드라마에 가까운 영화

정리하자면 '아가씨'는 스릴러보다는 드라마로 여기고 보시는 게 좋습니다. 아마도 거기에 집중하길 바라는 의도에서 두 번째 반전은 대수롭지 않고 유연하게 처리한 것 같습니다.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답게 상징과 은유가 수차례 등장하는 것도 찾아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 속 유머와 섹스 그리고 폭력의 절묘한 공존도 있습니다. 그런 것이 성인 관객의 구미에 적합한 영화로 만들면서도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를 전달하죠. '아가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지해야 할 때 웃기고 웃겨야 할 때 진지한 태도가 기이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제가 알고 있던 '김민희' 씨는 여기에 부합하는 배우였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다만 이미 말씀드렸던 것처럼 영화를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장치가 부족하다는 건 못내 아쉽습니다. 드라마에 집중하고자 반전을 너무 이른 시간에 소비하면서 뒷심이 떨어졌습니다. 아가씨와 하녀 또는 두 사람과 백작의 관계를 더 팽팽하게 유지하면서 드라마를 전개했더라면 어땠을까 합니다. 지금은 3부의 중반부터 아가씨와 하녀를 위한 박찬욱 감독님의 애정이 과하게 투영된 듯한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결말은 필요 이상으로 나아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노출의 표현 수위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확실히 기존의 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것이라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이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실 분도 계시리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것이 불필요했는가라고 하면 그건 아닙니다. 영화 속에서 이뤄지는 섹스가 단순히 육체적 쾌락만을 추구하거나 관객의 눈 여기를 위한 게 아니라는 걸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가씨'의 섹스는 적어도 포르노는 아니며 영화에 담긴 일종의 행위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관점에서 영화 '아가씨'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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