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새 인물의 조용하지만 숨 막히는 추격전을 그린 영화입니다. 제80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는 범죄 스릴러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보안관 톰은 자신의 과거를 읊조리듯이 내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올드맨' 즉 노인은 미래보다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 법칙을 말해주고 있죠.
동기 없는 살인
요즘 범죄는 딱히 동기도 없다. 이 말이 지금 등장하고 있는 살인의 안톤 시거를 대변하고 있는 말입니다. 안톤 시거의 살인은 동기가 없습니다. 그저 신념을 위해 살인을 할 뿐이죠. 안톤 쉬거가 체포되나 싶었던 그때, 업무보고를 하느라 정신없는 사이 안톤 시거는 잔혹한 살인을 저지릅니다.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는 정말 소름이 돋습니다. 바닥에 긁힌 구두 자국의 수만큼 그 잔혹함을 보여주는 장면 또한 독특한 연출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 무기인 캐들건을 들고 그 현장을 빠져나가는 살인마 '안톤 쉬거'. 그렇게 경찰차를 타고 도주하는 안톤 시거는 갑자기 지나가는 차를 멈춥니다. 느낌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살인마의 동기 없는 잔인함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안톤 쉬거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것이 이 캐들건입니다. 가축을 도살하는 목적으로 이용하는 도살용 공기총 하나로 문을 따고 살인을 스스럼없이 하는 모습을 자행합니다. 이 부분은 안톤 쉬거의 잔인함과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비 인륜적인 모습을 더 극대화시키는 장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의 중심으로 돌아와서 사냥을 하러 나온 모스는 피를 흘리는 개를 발견하고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채 근처에 차들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총격으로 쓰러져 있는 시신을 발견하고 주위를 살피던 중 이곳이 마약 밀매 현장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 명의 생존자가 있었죠. 모스는 생존자에게 돈이 있을 것이라는 직감 하나로 생존자를 찾아왔습니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어떤 음악을 사용하지 않고 주변의 소리에 의존해서 연출했습니다. 그 이유는 좀 더 인물 관계와 각자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에 집중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스의 직감에 딱 맞게 총상을 입은 한 사나이는 이미 죽은 상태였고 그 옆에는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자 암울한 결말을 가져온 돈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길로 돈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온 모스. 그날 밤 모스는 트럭에서 죽어가던 한 남자를 떠올리게 되고 급하게 마실 물을 챙겨서 그 남자의 길로 갑니다. 여기에서 모스는 비록 돈을 훔치긴 했지만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 양면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한 번 하죠. 누구나 실수를 반복하는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건 현장에 다시 갔을 땐 이미 그 사람은 사망한 후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건 현장을 다시 찾은 관련자들에게 발견돼 쫓기는 신세까지 되고 맙니다. 과연 모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모스는 부인을 먼저 도망치게 하고 자신도 도망갈 계획을 세웁니다. 그 무렵 어느새 점점 모스 곁으로 좁혀져 오는 안톤 쉬거. 사실 안톤 시거는 마약 밀매 관련자들이 고용한 킬러였죠. 자신을 주의 깊게 본 가게 주인이 기분 나쁜 시거는 또다시 살인의 발동을 걸기 시작합니다. 안톤 시거는 자신만이 신념이고 사실이라고 믿는 인물입니다. 가게 주인을 죽이기 위한 이유를 당연시하기 위해 동전에 의지하게 됩니다. 살인을 하고 싶지만 마땅히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살인의 이유를 만들려고 애쓰고 또 그것을 합리화하려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렇게 모스의 집까지 찾아온 안톤 쉬거. 하지만 모스 부부는 이미 도망간 후였죠. 소파에 앉아서 집에 있는 우유를 마시며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안톤 쉬거가 떠난 후 도착한 늘 한 발 늦는 보안관 톰. 노인의 무능함을 대변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안톤 쉬거가 우유를 마신 자리에서 똑같이 우유를 마시고 있는 톰은 늘 누군가의 뒤만 쫓는 인물인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앞에서 먼저 보여줬듯이 드디어 모스와 안톤 시거가 첫 대면하는 장면입니다. 필사적으로 돈을 지키려는 모스. 진짜 이 장면에서 좀 독특한 게 있습니다. 두 인물이 단 한 번도 가까이 마주치지 않으면서 그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만합니다.
자본주의의 시작을 보여주는 젊은 친구들
피를 흘리며 겨우 안톤 쉬거에게서 도망친 모스는 지나가던 젊은 청년들을 만나게 되고 끝까지 돈부터 달라고 하는 젊은이들은 급격하게 자본화되고 있는 80년대 미국 사회를 대표하고 있는 표본이고 그의 상반되게 모스는 퇴보한 인물, 즉 노인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부분이기도 하죠.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이 영화의 끝부분에 또 한 번 등장합니다. 갑자기 차 사고가 나버린 안톤 시거. 모스 때와 마찬가지로 젊은 친구들이 다가옵니다. 처음에는 돈과 무관하게 도와주네요. 자본주의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처음에는 말이죠. 하지만 두 아이는 돈으로 말다툼을 합니다. 이건 역시 자본주의로 변해가는 80년대 미국을 의미하는 것이죠. 이제 이 영화의 결말입니다. 결국 안톤 시거는 보스의 부인을 찾아오게 됩니다. 안톤 시거는 이제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하는 게 더 중요하게 돼 버린 것입니다. 또다시 그는 동전의 결정을 맡기게 합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안톤 쉬거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그녀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순간입니다. 맞습니다. 동전이 결정해 주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집을 나서는 안톤 시거는 신발을 확인합니다. 이 행동은 앞에 신어서 사람을 죽인 후 피가 묻어있는 양말을 벗는 장면과 같은 해석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살인은 진행하고 희생자의 고통 따윈 느끼고 싶지 않은 안톤 쉬거의 냉연함을 대변하는 장면이죠. 결국 모스의 아내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역시 신발에 묻은 피를 태연하게 닦습니다.
과연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진정 없는 것일까
그럼 은퇴한 보안관 톰의 결말은 어떨까요. 첫 번째 꿈은 이미 자신은 늙어버렸고 아버지는 어렸다고 하죠. 이는 과거의 아버지를 따르는 자신의 모습을 뜻합니다. 돈을 쥐어주었던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이끌어주는 어느 평범한 아버지 상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식들은 그 배움을 그때는 잘 모르고 따르지 않게 됩니다. 그게 바로 돈을 잃어버리는 톰의 모습인 거죠.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것들이죠. 두 번째 꿈은 아버지의 불빛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즉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나이가 먹은 후에 깨닫게 됨을 시사하는 꿈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시간이 흐른 뒤에 깨닫게 되는 것과 같은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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